고(故) 강수연 배우를 기리며
강수연 배우의 12년 만의 복귀작, 그리고 유작이 돼버린 '정이'
넷플릭스에서 큰 기대를 얻으며 개봉한 '정이'는 한국형 SF영화이다. 아직까지 크게 대성공을 거두거나, 완성도면에서 높게 평가되는 한국 SF영화가 없어서일까 개봉 시점부터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바로 한국 영화계의 전설적인 여배우 강수연의 복귀작이라는 것이다. '씨받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강수연은 2012년 '주리' 이후로 10년 만의 복귀작을 '정이'로 선택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만큼 대중들에겐 매우 반가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급작스럽게도 이 복귀작이 강수연 배우의 유작이 되어 버렸다. '정이' 촬영을 마치고 강수연은 22년 봄, 심정지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국제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배우 최초로 상을 받은 강수연 배우,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정이'는 공개 후 한국형 신파라며 날카로운 혹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느끼는 점은 모두 상이할 것이니 강수연의 마지막을 보고 싶다면 평가와 상관없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길 추천한다.
전투 용병 윤정이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탈출
지금으로부터 200년 뒤,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더이상 인간이 지구에서 살기 어렵게 되자 우주에 '쉘터'라는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이주를 한다. 하지만 여러 쉘터가 연합하여 자치국을 선포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인간은 쉘터와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주인공 윤정이(김현주)는 아픈 딸 서현(강수연)이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용병이 되어 전장에 나가게 된다. 수십 년째 이어지는 내전 속, 수많은 작전을 승리로 이끈 윤정이는 전설적인 용병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단 한 번의 작전 실패로 인해 윤정이는 하루아침에 식물 인간이 되고 만다.
영화 속 과학 기술은 뇌 복제 수준까지 이르러, 복제된 뇌를 AI에 이식하면 기억과 사고 방식 등 그대로 유지되어 인간일 때와 동일하게 로봇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인간 대우를 받는 A타입, 일정의 제한을 받는 B타입, 개발 및 연구용으로 자유롭게 복제가 가능한 C타입으로 나뉘어 있었고, 군수 개발회사 크로노이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윤정이의 뇌를 C타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유족들을 설득한다. 이에 윤정이의 뇌는 C타입으로 무한 복제되어 전쟁을 끝내기 위한 AI로봇으로 개발되게 되며, 35년 후 윤정이의 딸 서현이는 정이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전투 로봇 개발에 힘쓰게 된다.
하지만 끝없는 전투 시물레이션에서도 정이 프로젝트에 진전이 없자 크로노이드는 가정 로봇 개발과 같은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고, 이 계획을 알게 된 서현은 윤정이를 구하기 위한, 자신의 어머니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한 탈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한다.
K-SF에 한국형 신파를 곁들이다
'정이'는 영화의 방향성, 기대 정도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영화이다. 만약, 헐리우드의 SF를 기대한다면 현재 대중들, 그리고 평론가들에게 받고 있는 '한국형 신파'라는 혹평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불호에 가까웠는데, 화려한 영상미 그리고 로봇 영화에서 담는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가족 드라마에 가까운 느낌이라 기대에 크게 어긋났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눈물 포인트와 그 감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기나 긴 스토리 쌓기까지, 넷플릭스 영화의 빠른 전개와 그 자본력을 통한 화려한 영상미를 기대했다면 정이를 통해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정이'를 소박한 서사를 가진 단편 소설처럼 보여지길 원했다고 한다. 한 매체와 인터뷰 시 "처음 ‘정이’를 기획했을 때 SF가 먼저였는지 멜로드라마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동시였던 것 같다”며 “신파와 SF를 결합했을 때의 낯섦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정이’를 기획했다”라고 밝힌 걸 보면 그의 의도는 어쩌면 제대로 실현됐다고 볼 수 있겠다.
난 이제 한국에서도 SF 영화가 더욱 많이 만들어 지길 희망하고,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이 넓어지는 걸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런 관점에서 아직 '정이'는 한국 신파에 더욱 치우쳐 있지만 발전해 나가는 그 과정 속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타산지석이 되든 본보기가 되든 한국 SF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다.